이성은 개인전《멈춤의 내부(Within Stillness)》서문 (2026, 글 태병은│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우리는 단단하게 굳어 있는 것,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정지된 것들 앞에서 안도한다.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형상은 그 자체로 안정감을 준다. 기둥이 그렇다. 건물을 받히며 서 있는 기둥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것이 지닌 힘을 짐작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온전히 지탱하는 힘은 단단한 외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무게를 나누고, 중심을 바로잡으며, 끊임없이 긴장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고요하게 서 있는 것은 수많은 움직임을 견디는 것이다.
작가 이성은은 섬유를 소재로 기둥이라는 수직의 형상을 부드럽게 열어젖힌다. 그리고 단단함의 안쪽, 힘이 태동하는 숨은 내부의 층위로 관람객의 시선을 이끈다. 섬유는 우리의 살결에 가장 먼저 닿으며 삶의 온기와 기억을 고스란히 품어온 매체이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당연하게 우리의 몸을 감싸온 이 재료는, 우리 안에 쌓인 감각과 기억을 그 어떤 매체보다 솔직하게 환기시킨다. 섬유는 유연하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고, 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되면서도 다시 자신의 형태를 회복하려는 성질을 지닌다. 이성은은 이러한 섬유의 물성에 주목하며 3차원의 부드러운 조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온 섬유 아티스트이다.
작가는 내부를 지탱하는 이 숨은 힘의 서사를 인간의 ‘몸’으로 확장한다. “몸은 우리가 갖게 되는 최초의 공간이다. 몸은 움직이고, 기대고, 밀어내며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형성한다.” 라는 작가의 말은 몸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는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몸은 1차원적인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고 자신이 존재할 자리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주황색 계열의 섬유로 구현된 몸의 풍경이다. 피부 아래 감추어져 있던 근육을 떠올리게 하는 주황빛의 섬유들은 서로 얽히고 겹쳐지며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그것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내부의 힘이다. 면사와 울사, 메탈사 등 서로 다른 질감과 성질을 지닌 섬유들은 단단한 수직의 구조를 부드럽게 허물고, 서로를 감싸고 당기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여러 겹의 섬유가 빚어내는 불규칙한 표면에서는 회화의 붓질을 연상하게 하는 리듬이 감지된다. 화면 위를 빠르게 가로지르거나 천천히 머물고, 거칠게 밀어붙이거나 부드럽게 스며드는 붓의 움직임처럼 이성은의 작품 또한 서로 다른 속도와 밀도로 형상을 채워간다. 회화가 붓질의 흔적으로 시간을 기록하듯, 이성은의 작품에는 섬유를 감고 당기고 엮어낸 손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실의 꼬임과 섬유의 층 사이에는 작가의 손이 지나간 시간과 힘이 스며들어 있다. 단단한 구조를 이루기 위해 더해진 수많은 손길은 오히려 부드러운 표면을 만들어내고, 그 표면은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촉각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성은의 작품이 바라보는 예술에서 나아가 신체로 가늠하는 예술로 변화되는 순간이다.
아트리움 모리는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선보이는 청년 작가 공모「2026 MORI Young Artist」를 통해 선정된 작가 이성은의 개인전《멈춤의 내부 Within Stillness》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변화는 그동안 이성은의 작업에서 외형으로 제시되었던 기둥의 일부가 비로소 열리고 그 안쪽의 구조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내부를 드러내는 일은 단지 조형적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형상, 기둥, 나아가 우리 각자의 몸과 존재가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되묻는 일이다. 작가는 이 세계를 견디게 하는 수많은 힘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존재의 힘을 이야기한다. 아트리움 모리는 섬유라는 감각적 매체를 통해 입체적 서사를 풀어내는 이성은의 시도를 함께하고, 신체적인 매체로의 확장을 통해 전시 공간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3차원의 공간에 주홍빛 근육과 실의 결을 자아내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깊고 유연한 시각을 발견하기를 기대한다.